[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 - 벗겨내자! 본성만이 남을 때까지 /백진호/ 변영희 옮김
[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 - 벗겨내자! 본성만이 남을 때까지
박은 벗겨냄의 도입니다. 박은 벗겨냄[깎아냄]을 말합니다. 벗겨낸다는 것은 본래 자기가 아닌 모든 것을 벗겨냄을 말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가지게 된 나 아닌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직업, 이름, 나이, 건강, 외모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나에게 덧붙여진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끊임없이 나 아닌 것들을 깎아내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것을 깎아내는 일은 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나무를 없애는 일에 비유하면, 이런 것들을 깎아내는 일은 나무의 곁가지를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육사에서 “침상을 깎을 때 껍데기만 깎아내면 흉합니다[剝牀以膚 凶].”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벗겨내야 할 것들의 뿌리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존재계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체 의식을 벗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 개체 의식을 벗겨내는 일은 인생의 어느 시기이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일입니다.
박괘를 통해 죽음이 가까이에 다가온 노인의 벗겨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노인이 되면 육체는 쇠약해지고 살아오면서 품었던 욕망과 야망도 점차 약해집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비해 마음은 더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또한 사회적인 관습이나 외적인 상황의 영향에서도 보다 자유롭습니다. 경쟁심이 줄고, 아이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눈도 조금씩 생겨납니다.
젊은 시절에 가슴속에 품었던 최고가 되려는 욕망도 많이 사라집니다. 아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젊은 사람보다는 훨씬 더 자연의 순리에 따르게 됩니다. 물론 벗겨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노인이라면 이런 노인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 것입니다.
이처럼 벗겨냄의 노력을 통해 변화한 노인은 바깥으로 향하던 야망, 자기가 아닌 것들과의 동일시, 나 아닌 것이 되려는 시도 등이 약해지고 사라져, 자연의 순리에 자연스럽게 순응하여 도에 보다 가까워진 존재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알고 삶의 본질을 알아, 늙음의 자연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의 상황에 자족할 줄 압니다.
상에서는 “아상(我相)을 없애면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허물이 없습니다[象曰 以宮人寵 終无尤也].”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누구이건, ‘당신’ 아닌 것들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 자기의 본성만이 남을 때까지 깎아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주역] 산지박괘(山地剝卦) - 벗겨내자! 본성만이 남을 때까지|작성자 백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