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중원적萬衆怨賊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출은 금지사항이 되었다.
근 한 달 여 동안 수시로 폭발하는 험상한 기침때문이다. 사람들 앞은 고사하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도 무뢰한처럼 공격해 들어오는 기침에 속수무책이었다.
아들이 사온 죽을 먹기도 고역이었다. 죽 외에 물김치, 명란젓, 배추김치 등이 담겨있어 주방을 들락거리지 않고서도 앉은 채로 숟가락 운동만, 아니 입만 움직여주면 되는 그 사소한 동작도, 독감 환자는 애를 먹었다.
사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숟갈 뜨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했지만 식욕이 하도 멀리 도망 가서 그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외출이라니! 남을 이롭게 하는 볼 일!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 흠! 이때까지만해도 외출이 가능한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지하철의 씽씽 틀어놓은 냉방보다 덜 하지만 환자나라 입국 한 달 차인 나에게는 승용차의 온도가 오싹! 할 정도였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말처럼 삼복더위에 건강 에너지가 충만한 상대방에게 냉방을 꺼주세요! 는 차마 할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꾹, 참았다. 그동안 살인적인 기침으로 가슴팍이 금이 가거나 부서졌을, 부실한 건강 상태로 외출을 시도한 내가 우둔을 넘어 미련하고 한탄스러웠다.
게다가 웬 보리밥은 그리 잘 먹었는지. 보리밥 구경을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사람처럼 콩콩콩!
기침을 하면서도 각종 나물을 넣고 맛나게 비벼먹었다. 방금 밭에서 따왔다는 풋고추도 된장에 찍어 세개, 네개를 먹어치웠다.
점심 식사 후에 차를 마시고 좀 앉아 있다가 승용차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몸 증상이 슬슬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미슥, 미슥, 하면서 임신부 입덧하듯 당장 토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 들은대로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그 중간의 움푹한 부위를 연신 주물러 주었다. 조금 있다가 끄윽! 하고 신호가 왔다. 미슥거리기가 다소 덜해졌나.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상황은 위급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천리만리 멀었다. 길가에 핀 달맞이꽃, 무궁화꽃, 접시꽃, 산나리꽃이 밉살스러웠다. 아픈 사람 눈에도 화사한 여름꽃들이 보이다니!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화장실로 직행했고 엑! 엑 하면서 토악질을 했다. 모르면 몰라도 급체같았다.
약! 약을 먹었다. 그동안 독감 앓느라고 약에 질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가 지나서 눈을 뜨니 밤이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완전 꽝! 이 되었다. 몸을 추스리지 못한 채 다시 꿈나라로 들어갔다.
변영희! 너 왜 그리 미련하니?
네 몸을, 건강을 그런 식으로 방치하려면 차라리 지금 끝 내!
또하나의 변영희가 나에게 소리쳤다.
외출! 지금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두려움이다. 척추수술 후 동교동에서 신촌 형대백화점까지 걸음 연습삼아 첫 걸음을 떼어놓던 그 시절에 비해 많은 세월을 더 살았으니 당연한 귀결아닌가.
적어도 기침 귀신이 완전히 후퇴할 때까지는 자중자애하자. '외출 금지'를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실천하자.
나는 굳게 다짐한다.
환자된 나에게 바깥 세상은 만중원적 萬衆怨賊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