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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고 심덕 좋은/변영희

능엄주 2019. 1. 12. 22:46

두 블럭만 걸어가면 아들 네 집이다.

아들이 홀로 되어 두 녀석을 데리고 대구에서 이사온지 3년이 되었다.

이웃 해 산 게 퍽이나 오래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아들 네에 가는 일이 그다지 빈번하지 않다.

처음 얼마동안은 아들네 집에 주 3일 갔을까, 그런 다음 주 1회, 그러다가 어느 날 아들 네서

나오다가 길에 쓰러지고 부터는 주말  외에는 아들 네 집에 가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널브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부축해 주어서 겨우 몸을 추스려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아들 네 집에 가면 일이 많다. 아들은 빈틈 없이 잘 해나가고 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래도 내가 보면 언제나 그만큼의 일거리가 또 있다.

우선 반찬, 음식이다. 녀석들의 외가에서 공수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이다. 녀석들의 요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부분 마트에 들려 시장을 보아서 가기도 하고, 아들 네 냉장고에 쌓여있는 식재료를 선별하여

그 중에서 반찬을 새로 만들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버리고 하면서 잠시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게 된다.

 

집에 돌아올 때 보면 대체 몇 시간 동안 해놓은 일이 무엇이었던가 싶게 허망하다.

표가 안 나는 일이 바로 집안 일이다. 표가 안 나는, 생색도 안 나는, 게다가 평생 급료도 받지 않는  일을 20대 결혼 이후 척추뼈가 내려앉을 만큼 수 십년 계속해왔다.

 

집안 일이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중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다른 누구가 대신 해 줄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힘들면 사람을 호출할 수는 있다.

사람부리는 일, 그게 어디 용이한 일이던가. 타인이 와서 할 일이란 한정돼 있다.

그리 간단하게 해결지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새삼스럽다. 가사노동에 졸업이나 수료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긋한 나이와 부족한 체력이다. 그래서 아들 네로 가는 두 블럭이 때로 몇 십리 밖 아득한 곳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 것이다.

올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역사적인 장편소설<무심의 꽃>을 창작 집필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청주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엮느라고 거의 초죽음이었다.

와중에 치아가 말썽을 부려 발치하고 치료하느라 고역도 따랐다. 전례없는 혹서에 그야말로 죽어, 죽어 였다.

 

9월! 갈바람이 삽상하게 불어온다.

집안에 어려운 일,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여 몇 년 쉬었던 논문을 다시 펼치고 보니

정신과 육체가 공히 아리랑 고개를 넘듯  숨이 가쁘다. 간신히 지탱해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녀석이 궁금하고 생각나는 순간 나는 아들네로 달려간다.

5시간 동안 대체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이처럼 내몸은 파김치가 되었더란 말인가.

아들 방의 책상 앞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선한 성품, 좋은 계모. 다른 조건 다 그만두고 이 둘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긴히 바라는 바는 이에서 더 욕심부릴 수가 없다.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니 이게 웬일? 앞 뒤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좀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을 들은 것 같은데.

봐란 듯이 앞 뒤 창문을 다 열어두다니. 내가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창문을 열어두고 달려갔더란 말인가.

 

제발이지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그 고전의 주인공 말고,

어질고 심덕 좋은 여인, 애들의 새엄마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 밤 나의 소망은 맹랑하고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