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건네는 상대가 있다. 그래서 말은 돌아온다. 좋은 말은 웃는 얼굴로, 나쁜 말은 화난 얼굴로 돌아온다. 한번 뱉은 말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다. 때로는 운명을 옭아매기도 한다. 말에는 파장이 있다. 맵고 독한 말은 격하게 번져나간다. 상대를 죽이겠다는 말에는 자신 또한 죽을 각오가 들어있음이다. 혀는 칼이고, 입은 화(禍)가 들락거리는 문이다.
대통령을 탄핵했던 지난 몇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막말, 빈말, 거짓말이 난무했다. 아침에 들은 말을 저녁에 버려야 했다. 골목에서 주워들은 소문은 광장에서 맞춰봐야만 했다. 확인하기 어려운 가짜뉴스가 범람하여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켰다. 상대 진영에 던지는 말폭탄에 진실은 조각나 버렸다. 이성과 공동선은 맥을 추지 못했다. 날카로운 감정이 사람들을 끌고 다녔다. 결국 말은 보이지 않고 구호만 나부꼈다. ‘나쁜 권력’을 무너뜨렸지만 돌아보면 우리 모두 깊은 내상을 입었다.
요즘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속이 빈 말들이 악을 쓰고, 거짓말이 춤을 춘다. 대개 정치권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오늘도 여의도에서는 어떤 말폭탄을 누가 터뜨릴지 모른다. 정치인의 막말은 지지자들을 결집하거나 판세를 흔들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이들의 막말은 진영의 논리로 둔갑한다. 숱한 매체들은 이를 재생산하여 진영 결집에 활용하고 있다.
자고 나면 생겨나는 인터넷방송은 말의 해방구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맞춤형 뉴스에 환호하고 있다. 방송은 그들을 위해 더 자극적인 뉴스를 ‘개발’해낸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듣고 싶은 소식이 실제 뉴스로 둔갑한다. 그러자 가짜뉴스를 감별하는 방송까지 생겨났다. 그 방송이 뉴스 분리수거에 빼어난 실적을 올려도 가짜뉴스 공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마 더욱 분주하게 다른 가짜를 찍어낼 것이다.
새해 첫날까지 이어진 국회 운영위 회의를 지켜봤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예상대로 말싸움이었다. 야당 의원은 목청껏 윽박지르고 여당 의원은 그런 야당을 한껏 조롱했다. 여야는 자신들이 그어놓은 선을 절대 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왔다. 그들에게 말은 상대를 찌르는 무기에 불과했다.
그날 공방은 여당이 우세했다고 한다. 야당은 강력한 한방이 없었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까. 여당 의원들의 말투와 태도에는 조소와 야유가 묻어있었다. 예전 집권 여당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강자들의 포만감이 진하게 느껴졌다. 민간인 사찰 의혹은 지웠을지 몰라도 집권 여당의 오만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언론은 문제 삼지 않았지만 국민들은 보았다. 발톱 빠진 야당을 상대하는 ‘배부르고 게으른’ 더불어민주당을 보았다. 개혁은 아주 멀리 있었다. 말에는 모든 게 담겨있다.
새해가 밝자 이순자씨가 느닷없이 말폭탄을 터뜨렸다. 남편을 대신하여 광주를 모욕하고 민주주의 제단을 더럽혔다.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남편 전두환이라 생각한다.”
사면 받아 연명하는 사형수가 자신의 죄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반란의 수괴가 목청을 높이는 데는 우리 사회에 그런 망언이 스며들 구멍이 있다는 얘기다. 이씨의 발언은 극우 진영을 자극하는 선동이다. 우리는 민의로 이를 응징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의 분열이 망언의 숨구멍이다.
전두환에게 사죄를 요구할 때면 민족 반역자 최린(崔麟)이 떠오른다. 최린은 3·1독립선언 민족대표이며 열혈 항일투사지만 변절했다. 결국 그의 반민족 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최린은 최후변론을 하며 통곡했다.
“내 사지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찢어 달라. 그리하여 민족의 본보기로 삼아 달라.”
그의 마지막 말에 법정도 울었다. 아마 수많은 친일분자들도 가슴을 쳤을 것이다. 최린은 비록 역사와 국민의 용서는 받을 수 없겠지만 열혈 독립투사였던 시절의 자신에게는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역사는 친일 행각과 함께 그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다.
전두환도 치매가 더 깊어지기 전에 참회해야 한다. 자신의 탐욕에 희생된 사람들과 영문도 모르고 쿠데타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참 군인이 되어보겠다던 젊은 날의 군인 전두환과 비로소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말의 근본’이라고 했다. 한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그 후에 천마디 말은 한나절 햇볕에 증발하는 이슬일 뿐이다. 바른말이 세상을 끌고 간다. 새해에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말이 모든 것을 말한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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