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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의 삶을 기록할 때, 인생의 기적이 일어 난다 [박상미의 고민사전]/스포츠경향

능엄주 2018. 10. 17. 08:48

매일 나의 삶을 기록할 때, 인생의 기적이 일어 난다 [박상미의 고민사전]

마음치유 전문가 입력 2018.10.17. 07:00

               

“동생이 보고싶다 해서 양양에 갔더니 저녁에는 멀째이 얘기를 하더니 자고 일어나니 완전히 딴 사람이다. 나를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장모라고 해서 서운했다. 장모가 죽언 지 10년이 넘는데 장모라고 한다. 오 남매 중에 그거 하나 남았는데 치매가 와서 딴소리를 하니 서운했다. 나보다 14년이나 아랜 기 그래 똑똑하던 사람이 왜 치매가 걸리는지. 동생 하나 있는데 그 꼴이니 이젠 어디 갈 데도 없다.”

1922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이옥남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일곱 살에 길쌈을 배우고 아홉 살에 김매는 법을 배웠다. 글씨가 쓰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어서, 부엌에서 불 때면서 재 긁어 놓고 ‘가’자 써보고 ‘나’자 써보면서 배웠다. 여자가 글을 배우면 시집가서 편지질로 부모 마음에 못만 박는다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주질 않았다. 오라버니 어깨 너머로 배운 게 다였다.

열일곱 살에 지금 사는 송천 마을로 시집왔다. 그날부터 삶은 더 고달파 글씨를 쓸 시간이 없었다. 시부모 모시고 품팔이해가며, 술 좋아하는 남편이 먹은 막걸리 외상값 갚으며 살았다. 할머니 인생은 고개고개 피눈물. 스물일곱 살 때 아들 둘을 먼저 앞세웠다. 남편도 여자가 글 아는 것을 싫어해서 군대 간 막내아들에게 몰래 편지를 보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 사다가 혼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흔일곱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할머니의 기록 하루하루가 지어낸 비단이라 할까. 읽으면서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된 목소리가 아까워서, 멈춰서 곱씹고 멈춰서 곱씹어야 했다. 그래도 너무 재미나서 빨리 읽게 된다.

“소나무 가지에 뻐꾹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아침에 가마터 밤이 다 익었는가 하고 갔더니 아직 들 익어서 그냥 밭에 와서 김을 맸다. 열두 시에 점심 먹고 비설거지 해놓고 또 가서 겨우 조금 매다가 비가 와서 다 적새가지고 빨래 씨서 널어놓고 그냥 말았다. 애비가 바다에 나가서 방계를 잡아 와서 그것을 간장에다 끓이니 너무 잔인한 생각이 든다. 죄가 될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투둑새 소리, 매미소리에 맴(마음)이 설레고 매미가 빨리 짐(김)매라고 ‘맴맴맴맴’ 어찌나 허리를 빨리 잘도 놀리는지 ‘재주도 좋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입으로도 그렇게 재빨리 못 하겠는데 허리로 재빠르게 ‘꼬불랑 꼬불랑’ 하며 소리를 내는지. 매미야 나도 너처럼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늙은이가 필십이나 먹어 젊은 사람한테 ‘사시오, 사시요’ 하니 부끄럽다. 그래도 애써 가꾼 생각하고 운전운전 다닌다. 강낭콩이 잘 열어서 다 먹게 된 것이 날마다 비만 오니 자꾸 싹이 나싸서 보기가 딱해서 할 수 없이 내 자신을 욕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팔러 다닌다.”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책이 화제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난리다. 방송에도 나오라 하고, 신문사들이 인터뷰도 하고. 할머니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지금도 낫 들고 밭일 하고 얼른 들어가서 씻고 일기 쓰고 싶다.

나도 요즘, 자꾸만 할머니 문체를 흉내 내는 것 같다. 세상 어느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인생의 지혜가 책 속에 있다. 매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읽고, 만나는 사람 붙잡고 읽어주고, 혼자 웃다가 울다가 그런다. 할머니의 일기를 읽다보면, 매일 작은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66세에 시작한 일기 쓰기. 할머니의 인생에 기적이 일어났다. 베스트셀러 작가 이옥남 할머니를 만나서 한 번 안기고 싶은 가을!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 매일 일기를 씁시다. 인생의 기적이 일어날 겁니다.

■마음치유 전문가 박상미는?

마음치유 전문가로 불리는 박상미씨는 마음치유 교육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의 대표다. 현재 경찰대학교 교양과정 교수로 있다. 법무부 교화방송국에서 전국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영화치유 강의를 하고, 교도소와 소년원에서는 <영화치유학교>,<문학치유학교>를 연다. 직장인과 일반인들 대상으로는 감정조율과 소통, 공감 대화법 강의를 한다. 마음의 상처와 대화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는 책 <마음아, 넌 누구니>와,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 <마지막에는 사랑이 온다> 등을 썼다. 고민상담은 skima1@hanmail.net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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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박상미의 고민사전

출처 스포츠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