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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못난이' 은진미륵/뉴스 ZUM
능엄주
2018. 2. 15. 09:41
[만물상] '못난이' 은진미륵/조선일보 원문 입력 2018.02.15 03:11 수정 2018.02.15 06:42
"그림이 걸린 벽의 벽지가 훨씬 완성도가 높은 것 같다." 1874년 클로드 모네가 전시회에 출품한 '인상, 해돋이'에 야유가 쏟아졌다. 붓으로 대충 그린 듯한 항구의 해돋이 풍경은 사실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모네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도 않고 작품이라고 우긴다고 비난했다. 모네는 풍경 자체가 아니라 풍경이 남긴 인상을 화폭에 옮겼다. '인상, 해돋이'는 19세기 후반 서양미술사를 뒤흔든 '인상파' 탄생을 알리는 대표작이 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미술관 대표작은 피카소가 1957년 그린 '시녀들' 연작이다. 젊은 날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17세기작 '시녀들'을 모델 삼아 일흔여섯 살 화가는 다섯 달 동안 58점이나 그렸다. 피카소는 벨라스케스 작품을 해체한 후 재구성해 귀여운 마르가리타 공주는 못난이로, 강아지는 도형으로 그리는 독창적 해석을 했다. 이 그림이 19세기에 나왔다면 거장(巨匠)을 모독한 미친 화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은진미륵'으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보물 지정 55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고려 초인 968년 세워진 이 불상은 18.2m 높이 국내 최대 석불이다. 그런데 세련된 통일신라 불상에 비해 조형미가 뒤떨어지는 '못난이' 불상으로 취급받았다. 체구에 비해 얼굴이 너무 커 인체 비례로 하면 4등신도 안 되는 데다 눈·코·입까지 커서 괴상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못난이' 불상 은진미륵의 극적 반전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은진미륵에 "민간신앙에 남아 있던 장승의 이미지를 불교적으로 번안한 듯한 토속성이 보인다"고 했다. 기적을 일으킬 만한 괴력(怪力)의 소유자 같은 모습으로 민중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이 불상이 의도적으로 고전 미학을 벗어던지고 개성적 모습을 갖췄다는 해석도 있다. 문화재청이 밝힌 국보 승격 사유도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 '뛰어난 독창성과 완전성'이었다.
▶예술품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17~18세기 달항아리도 그렇다. 약간 울퉁불퉁한 데다 이지러진 달항아리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아오다 가치를 인정받은 게 불과 몇십년 전이다.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이 "무심한 아름다움"이라고 한 달항아리는 평창올림픽 성화대로도 선보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늘 바뀐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는 달항아리나 은진미륵처럼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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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미술관 대표작은 피카소가 1957년 그린 '시녀들' 연작이다. 젊은 날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17세기작 '시녀들'을 모델 삼아 일흔여섯 살 화가는 다섯 달 동안 58점이나 그렸다. 피카소는 벨라스케스 작품을 해체한 후 재구성해 귀여운 마르가리타 공주는 못난이로, 강아지는 도형으로 그리는 독창적 해석을 했다. 이 그림이 19세기에 나왔다면 거장(巨匠)을 모독한 미친 화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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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미륵'으로 알려진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보물 지정 55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고려 초인 968년 세워진 이 불상은 18.2m 높이 국내 최대 석불이다. 그런데 세련된 통일신라 불상에 비해 조형미가 뒤떨어지는 '못난이' 불상으로 취급받았다. 체구에 비해 얼굴이 너무 커 인체 비례로 하면 4등신도 안 되는 데다 눈·코·입까지 커서 괴상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못난이' 불상 은진미륵의 극적 반전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은진미륵에 "민간신앙에 남아 있던 장승의 이미지를 불교적으로 번안한 듯한 토속성이 보인다"고 했다. 기적을 일으킬 만한 괴력(怪力)의 소유자 같은 모습으로 민중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이 불상이 의도적으로 고전 미학을 벗어던지고 개성적 모습을 갖췄다는 해석도 있다. 문화재청이 밝힌 국보 승격 사유도 '파격적이고 대범한 미적 감각' '뛰어난 독창성과 완전성'이었다.
▶예술품의 진가를 재발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17~18세기 달항아리도 그렇다. 약간 울퉁불퉁한 데다 이지러진 달항아리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아오다 가치를 인정받은 게 불과 몇십년 전이다. 미술사학자 고(故) 최순우 선생이 "무심한 아름다움"이라고 한 달항아리는 평창올림픽 성화대로도 선보였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늘 바뀐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진리는 달항아리나 은진미륵처럼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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