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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地剝卦/민족종교신문/ 변영희 옮김

능엄주 2017. 12. 19. 07:59

산지박山地剝

 

절망의 뒤안길에서도 과일은 익는다

 

박괘는 음효가 극성하고 양효 하나가 위태롭게 남아 있는 극단적인 음양 부조화의 괘이다. 음양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서늘한 음의 기운이 가득 차올라가 모든 양이 꼭지가 떨어져 박락(剝落)이 되고 겨우 하나만 남아 있다. 소인이 군자를 깎아 먹고, 음이 양을 깎아 먹고, 불선한 악이 선을 깎아 먹고, 자기 본성을 스스로 다 깎아 피폐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사회가 혼란해져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양심적인 선량한 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이들은 시운에 순응하여 모든 것을 삼가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오지 않아야 한다. 양심세력은 한걸음 물러나서 순하고 침착하게 사회의 혼란상을 관망한다. 본래 천도(天道)는 사라지면 다시 불어나고, 비워지면 다시 채우면서 끊임없이 운행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順而止之 觀象也 君子 尙消息盈虛 天行也].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 이것이 바로 소식영허의 이치이다. 소인이 아무리 어지럽게 해도 천도 운행을 숭상하는 군자는 마음을 순하게 가지고 자기가 그칠 때를 알아서 그치기 때문에 순지(順止)의 덕으로 관망한다는 것이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이치, 천도운행의 이치를 마음으로 체험하며 박의 시대적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기울면 다시 차오른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도 가장 소중한 것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깎을 박, 尙숭상할 상, 消사라질 소, 息불어날 식, 盈찰 영

 

 


처음 음효 “상의 다리가 꺾인다”

 

부정부패와 기강이 문란해져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평상이 발을 꺾으니 쓰러진다. 사람이 서 있어야할 발을 한쪽으로 기울여서 넘어진다. 바르고 정직한 사람들이 버틸 곳을 잃는다[蔑貞]. 이들은 혼탁한 사회가 쳐놓은 덫에 걸려 사라져 간다. 정의 사회가 무너져 간다. 흉하다[剝牀以足 蔑貞 凶].

평상 상, 蔑없앨 멸

 

둘째 음효 “상다리의 횡목이 꺾인다”

 

이 효는 호응할 상대가 없어서 고립 속에서 불안하다. 혼자서 착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음들과 더불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는 데 동참한다. 신변의 위험이 다가 온다. 위아래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 행동에 나섰으나 때가 오면 적시에 비켜가서 위험을 피해야 한다. 고집스럽게 자기 소신을 계속 밀어 붙이려고 하면 몰락할 것이다[剝牀以辨 蔑貞 凶].

판대기 변. 여기서는 상과 다리가 구분되는 언저리

 

셋째 음효 “윗자리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이 효는 그냥 그런대로 허물이 없다. 유일하게 위 효인 양효와 응하여 그쪽의 후원을 받으며 난동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위 아래 이웃들을 다 잃더라도 위 효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 이 효도 나쁜 주변 환경의 한 복판에 서 있지만, 위의 높은 인물과의 내적인 관계가 있어 주변사람들의 북새통으로부터 벗어난다. 별 탈 없이 지나간다[剝之无咎].

 

넷째 음효 “재앙이 신변 가까이에 다가 왔다”

 

침상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몸이 깎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즉시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전체가 붕괴된다. 흉액(凶厄)이 신변에 까지 가까이 왔다[剝牀以膚 切近災也]. 어려운 때에는 오히려 모든 것을 다 벗어버리면 박의 기운을 이겨낼 수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데도 안간힘을 써서 버티려고 하면 몸과 마음이 상해 후일을 도모하지 못한다.

살갗 부, 切절실할 절, 災재앙 재

중심 음효 “고기 꿰듯이 줄을 서서 총애를 받길 원한다”

 

다섯 효 가운데 제일 높은 위치이다. 이 효는 후비(后妃) 신분에 해당된다. 궁인(宮人)을 통솔하여 위 양효의 총애를 받는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 관어(貫魚)는 궁녀들에게 차례로 임금의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 고대 중국 황실에서는 보름날은 왕비가 왕을 침전에 모셨다. 보름 전날 밤에는 낮은 궁녀부터 높은 궁녀 순으로 하루씩 돌아가며 왕을 모셨다. 보름 후에는 높은 궁녀부터 낮은 궁녀의 순으로 왕을 모셨다. 왕비가 궁녀들을 순서대로 조직하여 왕과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貫魚 以宮人寵 終无尤也].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아 이제 혼란기가 끝나가는 과정이고 문란과 부패의 어둠이 지나고 왕실에서부터 질서가 잡히는 새벽이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꿸 관, 寵사랑 총

 

위 양효 “씨가 될 큰 과일은 먹지 말라”

 

하늘은 전부 다 죽이는 이치는 없다[天無盡殺之理]. 박의 시대가 끝이 보인다. 선(善)의 씨앗은 아직 남아있고 과실이 땅에 떨어져 씨앗으로부터 새로운 좋은 과실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곳곳에 묻혀 숨어 있던 유능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다시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 괘에서 유일한 양효인 이 효는 씨알 좋은 종자인 것이다. 박락의 시대에도 후일을 기약하며 곡식이나 과일의 큰 씨앗은 남겨 두었고 이것들이 싹트고 자라나듯이 군자의 덕과 영향력이 대중에게 먹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박괘는 악한 음이 선한 양을 깎는다는 뜻에서 글자도 ‘칼[刂]로 근본 종자[彔 근본 록]를 깎는다는 뜻이다. 무성하던 나무가 가을에는 낙엽으로 지고 과일도 익어 떨어진다. 처음 효는 상다리를 깎으니 기우뚱한다 하여 다리부터 깎인다. 둘째 효는 상 언저리를 깎으니 지탱하기 어렵다. 셋째 효는 위의 위 효와 어울려서 그 영향을 받아 다른 효와 달리 탈 없이 버틴다. 넷째 효는 몸에 살을 깎아 재앙을 당하여 흉하다. 중심 효는 과거의 잘못을 깨달아 모든 음을 물고기 꿰어달듯 하여 양에게 사죄하고 위로부터 총애를 받는다. 위 효는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어 사회악을 구제한다. 씨가 될 큰 과일을 먹지 말라고 했다. 석과의 씨앗은 반드시 결실을 맺기 때문이다.

출처 :민족종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