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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소망

능엄주 2017. 11. 13. 14:44

11월의 소망


앞 뒤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단풍 색깔이 화려하다.

봄에 개살구 꽃이 연분홍으로 피어나는 모습도 환상이지만 늦은 가을 날 노랑 빨강,  또 그 사이에 보이는 파스텔조의 은은하고 품위있는 빛깔은 더욱 아련하고 매혹적이다. 글을 쓰다가 중간중간 눈을 쉴 겸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얼마나 그윽한 계절인가.

깊은 사색에 잠기게도 하고, 옛 추억을 그립게 떠올리며  행복감, 혹은 슬픔에 겨운 과거로의 여행을 시도해 볼 수가 있다.  

때문에 가을은, 더구나 늦가을은 눈물겨운 애상哀傷의 계절이기도 하다.


일년 중 11월 중순 이맘 때가 어쩌면 나의 인생 주기로 말하자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혹 들곤 한다.

 해마다 늦가을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정유년 올해 만추는 특별하다..

조금 더 살아도, 아니 지금 당장 죽음으로 간다고 해도 조금도 후회나 회한은 남지 않을 적지 않은 나이테를 살아왔다.

죽음의 시기가 사람에 따라 일정한 연한이 자로 잰 듯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조상 대부분은 내 나이보다 훨씬 젊어서, 혹자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것이 아니라 전란에 희생된것이다. 억울하고 슬픈 종말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일찍 세상을 하직한 그들에게 대한 어떤 의무, 소명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들이 살았던 날들의 꿈과 소원, 이루고 싶었던 수많은 일들을 내가라도 대신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혀 잘 못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그들을 닮아있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을 것이며, 그들과 어린 시절 희노애락을 함께 한 경험이 녹녹지 않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스산할 때 나는 최대한 그 모든 장애를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나 마저 죽어지면 그들의 애통함과 원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죽은 자에게 애통이니 원한이 남아 있을까 싶지는 않지만 수시로 연상되는 그들의 면면들은 내 작품의 원소가 되고 동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결코 일상의 삶에서 추호라도 방심하거나 나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11월은 1년의 끝에 해당한다고 본다. 늦 가을의 정취에 폭 매몰되다가도 불현듯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내 부모님. 내 언니와 오리비들, 그리고 내 동생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고 그것이 내 의무로 각인된지 오래이다. 그뿐이랴. 나의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나는 기쁨의 화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수백생을 기다려 혈친으로 인연맺어진 그들, 나의 분신과도 같은 그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내 삶의 고된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음으로 양으로 빚진 자이다. 마음의 빚이 얼마나 지대한지. 그에 비하면 물질의 빚도 경중을 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내게 일용할 의식주, 물질을 허락하고,  세상살이에 지쳐 쓰러질 때 용기를 주었던 혈친, 동기를 위해 내 남은 생은 온전히 베품과 나눔으로 일관하기를 소원한다. 한 권의 책을 발간하는 것, 한 줄의 문장이라도 소홀할 수 없고 그 목적은 하나이다.


나는 지난 시절 너무나 철이 없어 내 부모님을, 내 환경을, 내 능력 없음을 원망하며 살았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원망은 고사하고 온통 감사의 조건 뿐인 것을 내가 미처 몰랐던 소치였다. 나는 과분하다 싶게 많은 재능을 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으며 능력이 없다고 느낀 것은 무지와 편견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타고난 분복대로, 소양대로 나는 자랐고 자연의 법칙대로 잘 살아온 것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단풍 속에서 11월이 줄달음 치고 있다. 11월이 애상의 달이든 희망의 달이든 영원으로 가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가는 세월 붙잡아 맬수는 없지만 나는 부단히 나를 일으켜 세우고 채찍질하여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 마침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하리라.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그들 모두에게 사랑빚 갚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살아 생전 못다한 효와 우애를 겸하여 나는 기필코 큰 사람이 되어 더 훌륭한 작품을 생산하고자 매진할 것이다.


나는 또다시 눈을 돌려 창밖의 단풍을 바라본다

내 년 봄 귀여운 개살구꽃이 필 즈음에는 나의 새 소설이  천지사방에 우뚝 빛나기를 꿈꾼다.11월의 회한이  [무심의 꽃] 으로 피어나 

화엄의 셰계로 승화되어  온누리를 가득 채우고, 얼음처럼 굳어버린 모든 동적 정적 사물을 부드럽게 녹여내고자 한다.

11월의 열정이  [무심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