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밤/변영희
시월의 날씨는 연속 쾌청를 기록하고 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역시 어제불던 험한 바람 대신 하늘 맑고 바람 순후하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자 문득 외출하고 싶어진다. 어디라고 방향 정한 데는 없어도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다.
호수공원에 갈까. 싱가폴 여행을 떠난 친구는 지금쯤 귀국해 있을까.
북촌마을로 산책을 나가볼까..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무작정 나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외출을 계획하자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진다.
또그덕 똑똑! 카톡오는 소리!
친구의 호출이겠거니 지레 짐작을 한다. 폰을 열었다.
웬걸! 택배가 도착한다는 우체국에서 날아온 소식이다.
누굴까? 누구에게서도 택배를 보낸다는 메시지를 받은 일이 없다.
일단은 나갔다 오자!
택배는 출입문 밖에 놓아두던가, 경비실에 맡겨도 좋을 것. 동동거리며 외출 채비를 서두른다.
딩동! 딩동! 재빨리 뛰어나갔다. 택배였다. 출판사에서 온 내 책 <매지리에서 꿈꾸다> 교정지였다.
일을 만난 것이다. 일을 두고 어찌 밖으로 나갈 수가 있담.
오류, 오자誤字는 과히 심하지 않지만 만전을 기한다는 각오로 차분히 교정에 임했다.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눈이 부시게 글자를 훑어나갔다. 어느덧 완전 밤이 되었다.
동서로 바라다보이던 단지 안의 단풍도 더는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었다. .
위장도 비어있고, 마음 또한 출출하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시월의 마지막 날이 저문 것이 못내 아쉬웠다.
컴퓨터를 열고 가을을 노래한 가수들을 검색한다. 많은 노래 중에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선택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른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은 당신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잊을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우~ 우~ 우~
가사보다 음이 더 좋았다. 잘 삭고 녹아흐르는 듯한 선률이 메마른 가슴을 적셨다.
잊을 수 없는 꿈? 가사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지만 어쨋든 가을 밤의 서정을 부추기는데는 손색이 없다.
와인은 없어도 노래는 흥겹고 애잔하게 시공간에 흘러넘쳤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하고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간 연인은 내게 없지만 노래는 충분히 신나고 즐거웠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나의 감상이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게 잘 마무리되어갔다.
시월은 지나가지만 조만간 친구들을 한 자리에 부르고 싶어진다..
홀연 무량한 그리움이 샘솟는 것을 어찌 제어하랴.
시월의 마지막 밤은 추억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