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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렇게 /변영희

능엄주 2016. 11. 6. 21:53

아직도 이렇게    

  

날짜 : 09-11-22 21:04     조회 : 1241    

11월의 밤 큰애가 사온 포도 한 송이 저녁밥 대신 떼우고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나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비오는 창 밖을 멍하니 내다 본다. 그리움일까. 집착일까 .회한일까. 잘못 살아온 후회의 감정일까.뭉뚱그려지지 않는 마음 부스러기 수천 개.조각보를 뒤집어쓰듯 누덕누덕 남루한 마음 조각  갈무리 못한 채 그저 맥없이 어둔 밤을 응시한다.

며칠 후면 내 곁을 떠나갈 큰 애를 생각하면서.

세살인가 네살 무렵 차타고 지나며 얼핏 본 한독약품 회사 로고를 그모양 그대로 크레파스로 그려내 어미를 깜짝 놀라게 한 녀석.

방바닥이건 벽이건 전체가 그애의 도화지가 되곤하여 일년이면 두어 차례씩 도배장판을 새로 하게 하던 녀석.

돌짝 뒤져 가재쑤시던 마북리 논뺌이.온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주전부리이던 도마도  아저씨 기다리던 아카시아 피는 언덕,

샛노란 은행잎 풀풀 날리던 교회 건물을 놀이터 삼아 뛰던 내 아이들과  목사님네 개구장이들,

古川 징검다리 건너 떡방앗간 갈 때 무거운 떡쌀 담긴 양은 바케즈 들어주던 3학년 내 아들,

왕곡리 산골짝으로 상수리 털러 갈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땡벌에 쏘이며 흩어진 상수리를 모아 자루에 담아주던 아들.

 00학교 대표로 경기도 관내 사생대회 나가서 구도와 채색이 우수했다나,
숱한 경쟁자 물리치고 우수상 받고 수줍던 내 어린 아들.

사계절 돌아가며 큰 애가 그린 그림으로 학급의 환경정리를 해주던 구민숙 선생님의 호의,

이젤 앞에 앉기만하면 날새는 줄 모르고 그림에 몰두하던 녀석이 장삿길로 들어선 지 십 여 년. 

 
날고 기는 외국인들 틈새에서 억척같이 돈벌어 어미가 저에게 했듯 엄마 학비를 도와주던 녀석.

아침에 빗자루 들고 골목길 쓸다 발동걸려 저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벽돌 담장에 삐딱하니 기대앉아 저무도록 노래부르면 하

모니카, 바이얼린, 피리 등속을 챙겨들고 마당에 나와 동생들과 함께 음악회를 주관하던 낭만적인 면이 두드러진 녀석의 장삿길 사연.
사내새끼가 무슨 그림이냐고 미술학원 대신 태권도를 가르친 저 아버지와 쌈쌈해서 간신히 미술대학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예술적 감각, 안목, 적성, 취미 다 집어던지고 험난한 삶의 벌판으로 달려간 큰 애 이야기

비내리는 11월의 밤. 나는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가.

왜 그애가 가엾어 지는가. 자기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지 못하도록 누가 종용했는가. 팔자인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그 준수?하고 귀골스럽던 용모가 지금 아니어서 나는 애달픈 것인가.

돈은 만져도 애초에 꿈꾼 00화가와 같은 분위기에서 영영 멀어진 모습에 내 속물 근성이 타격을 입은 것인가.

애지중지하던 피스와 그림붓이, 그림 도구가 어디있는지도, 물감과 크고 작은 각종 붓 종류들이 왜 그처럼 소중했었는지조차 돌아볼 줄 모르는 무신경이 안타까워서인가.

11월의 밤이 슬프다. 슬프다 라는 간단한 말따위로는 내 마음의 풍랑을 몽땅 표현하지 못한다. 어림도 없다.

밤새 궂은 비나 내려라. 아니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갈갈이 찢어지는 내 마음을 훈훈히 덮어줄 함박눈.

김장이야 했든 말았든 상관없다. 아들이 떠나는데 김장이 대수랴.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찢어지는 것은 마음 수련(修鍊)이 부족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희순  09-11-23 11:41
...그러나
온 하늘이 검은 비구름에 뒤덮였을지라도 지금은 낮 열두 시 이기에
결코 어둠이 지배하지 못합니다.

아드님이 가려고 작정했으나 가지 못한 세월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회한과 무한한 사랑에 가슴이 저려 공허 속에 몸을 맡긴 채
한참 앉아있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 길 따라 걸어 올라간 산들의 이름은
참으로 다양하고 사연도 많겠지만
자의건 타의이건 자신이 오른 '00산'의 '00'이 아닌
'산'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슬프지는 않을 듯합니다.
     
변영희  09-11-23 23:08
이희순 선생님

읽어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 전합니다.
아들 따라서 나도 가버릴까 싶기만. 영어라도 좀 하면  가능한데 세상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개탄스러워라. 아침에 눈뜨면 여전한 무지.
박원명화  09-11-23 12:28
자식을 생각하는 어미의 마음을 보는 듯 합니다. 저 역시 아이 셋을 멀리 떠나 보낸 처지라 변선생님과 동병상련이랍니다. 곁에 있어도 애닮은 것이 자식이란 존재인 걸 보면 어미의 짝사랑은 영원불멸 한 것 같습니다.
     
변영희  09-11-23 23:15
박원명화 선생님

우리들 처녀시절 누가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현모양처라고 해야 정답이 되었지요. 그게 지극히 당연하고 올바른 대답이었고. 세상 돌아가는 뽄새?가 대강 그런 추세였으니까.
다음 생이 안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내게 후생이 주어진다면 절대 여자, 엄마로는 살지 않을 생각. 너무나 애달퍼라. 엄마노릇 어떤 직업보다 힘들어라.잘한 것도 없으면서 아픔이더라.
그대에게 늘 감사. 변능엄주 合掌
이진화  09-11-24 01:48
변영희 선생님, 아드님을 향한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져 옵니다.
언제나 되어야 자식에 대한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믿고 끝까지 기다리면 자신의 몫을 넉넉히 해내리라 믿습니다.
     
변영희  09-11-24 12:08
"자식과 영혼의 태를 끊어라"
어느 선각자가 충고한 것처럼 하나의 착일 뿐.
알면서 실행못하는 나약함.
친구들과 약속도 깨고 들앉아 있는 답답한 모정
감사합니다.
박영자  09-11-24 03:11
변영희선생님, 자식을 향한 마음처럼 아리고 아픈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어느 어미인들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하기만할까요. 세상에 하고싶은 일하며 사는 사람 은 몇이나 될까요.
눈 감아야 없어질 자식걱정 어미들의 업보인걸요.
     
변영희  09-11-24 12:26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 특히 작가님들.
11월은 마음 산란한 달. 아들 떠나는 달.
이 어미의 업보는 왜 이리 두터운가.
지구촌시대에 비행기만 타면 갈 수 있는데 웬 감상?
박영자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임재문  09-11-24 03:27
아들을 결혼시켜 분가하고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래도 못잊는 것이 아들이 아닌가 합니다. 노심초사 항상 어리게만 보이는 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변영희  09-11-24 12:33
놔버려야지.
3년 후 다시 만날 건데.
아니면 다 버리고 비행기 나도 타든지.
읽어 주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최복희  09-11-26 11:18
아드님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또 그리움으로
보내야 할 날들이 질펀하게 펼쳐지는 순간의 어미의 심정을 잘 도 나타내셨네요.
짧은 글이지만 역시 소설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시는 글입니다.
머지않아 또 다른 옥고를 만날 것 같군요.
기대가 됩니다.
     
변영희  09-11-26 12:27
큰아들 가족이 먼저 L A 로 떠난 후  일이 남아 며칠 더 머물던 아들마저  내일은 인천공항으로. 엄마 바보는 주루륵 눈물이.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엄마에게 시장 보아다 주어 포도를 , 감을, 사과를 깨물면서 훌쩍훌쩍.  무척 강한 줄 알았더니 맹물네아즘씨가 바로 나. 정서적으로 서늘한 날은 감기가 훔씬 깊어져 밖에도 못나가고
"아들아 잘 가라. 3년후 다시 만날 때는 <마흔넷의 반란> 보다 엄마가 더 빛날 거야."
혼자 독백하는 중 친절한 복희씨로부터 위로?의 글.
정말 고맙습니다.
정희승  09-11-26 16:59
우리 모두는 살면서 종종 길 어디쯤 한줌 바람, 슬픔, 우울, 고독.... 그런 거 내려놓고 왔지요. 그래서 겨우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거지요. 그래도 성이 차지 않을 때는 커튼 뒤에서 들먹이며 울지요. 누구나 커튼 뒤에서 커튼콜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
아드님을 향한 절절한 회한이 읽힙니다. 다 채워주지 못한 부모로서의 아픔이겠지요. 그래도 자식은 그런 부모의 우려와 달리 자신의 몫의 인생을 떳떳하게 살아갑니다.
변영희  09-11-26 18:24
낮동안 감기약에 취해 정신없이 잠자다가 눈 뜨니 어둠.
지금 이 시점에서 잠에나 떨어지다니 참으로 답답.
돌아보면 엄마노릇 엄청 중요한데 0점 엄마가 바로 내가 아닌가 싶기도.
[별자리못 전설]의 정희승 선생님 감사합니다.
'별자리못' 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칠불사> 경내의 연못을 그리게 됩니다.
아침 저녁 산보다니던 그 연못.
정진철  09-11-28 08:57
그만 우세요~ ㅎㅎ 너무 그러시다가 건강 해칩니다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변영희  09-11-29 10:25
단골 손님의 출현을 기다렸다고나.
어쩐 일일까 무슨 연고인가 하면서.
말로 글로 다 안되는 사연 술로? 소설로? 바야흐로 구상 중 이랍니다.
정진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겨울 아침
박영보  09-12-02 17:38
아들만 둘을 두고 있는 저는 이곳에 살면서 느끼며 나름대로의 결론같은 것을 내린적이 있습니다. <자식과의 실질적인 거래(?)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끝>이라는~. 그것도 그럴 것이 대학을 가면 집을 떠나게 됩니다. 부엌의 개수대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달그닥 거리는 소리도 없이 물소리만 들릴 때는 틀림없이 아내가 눈물을 짜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졸업하면 직장이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되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어 그들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이후부터의 방문은 손님처럼 여겨지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부모님들은 변영희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공감을 하며 읽었습니다.
변영희  09-12-02 19:30
박영보 선생님

올들어 두 번이나 저는 보령에 다녀왔습니다. 거기 별장?에 홀로 살고 있는 -- 글 쓰는 분이 오라하여서요. 대천 바닷가가 20분 걸으면 나오고 다른 동네에 비해 경치좋고 부촌같은 인상을 주는 동네였지요. 선생님네 고향엔 누가 살고 계시나요?

"자식과의 영혼의 태를 끊어라'" 라고 말들 하지만 그게 안쉬워요. 미국 사는 제 친구도 선생님처럼 그리 말했어요. '그러나' 지요.
미국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