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밤 큰애가 사온 포도 한 송이 저녁밥 대신 떼우고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 나앉아 빗소리를 듣는다. 비오는 창 밖을 멍하니 내다 본다. 그리움일까. 집착일까 .회한일까. 잘못 살아온 후회의 감정일까.뭉뚱그려지지 않는 마음 부스러기 수천 개.조각보를 뒤집어쓰듯 누덕누덕 남루한 마음 조각 갈무리 못한 채 그저 맥없이 어둔 밤을 응시한다. 며칠 후면 내 곁을 떠나갈 큰 애를 생각하면서.
세살인가 네살 무렵 차타고 지나며 얼핏 본 한독약품 회사 로고를 그모양 그대로 크레파스로 그려내 어미를 깜짝 놀라게 한 녀석. 방바닥이건 벽이건 전체가 그애의 도화지가 되곤하여 일년이면 두어 차례씩 도배장판을 새로 하게 하던 녀석. 돌짝 뒤져 가재쑤시던 마북리 논뺌이.온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주전부리이던 도마도 아저씨 기다리던 아카시아 피는 언덕, 샛노란 은행잎 풀풀 날리던 교회 건물을 놀이터 삼아 뛰던 내 아이들과 목사님네 개구장이들, 古川 징검다리 건너 떡방앗간 갈 때 무거운 떡쌀 담긴 양은 바케즈 들어주던 3학년 내 아들, 왕곡리 산골짝으로 상수리 털러 갈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땡벌에 쏘이며 흩어진 상수리를 모아 자루에 담아주던 아들.
00학교 대표로 경기도 관내 사생대회 나가서 구도와 채색이 우수했다나, 숱한 경쟁자 물리치고 우수상 받고 수줍던 내 어린 아들. 사계절 돌아가며 큰 애가 그린 그림으로 학급의 환경정리를 해주던 구민숙 선생님의 호의, 이젤 앞에 앉기만하면 날새는 줄 모르고 그림에 몰두하던 녀석이 장삿길로 들어선 지 십 여 년. 날고 기는 외국인들 틈새에서 억척같이 돈벌어 어미가 저에게 했듯 엄마 학비를 도와주던 녀석. 아침에 빗자루 들고 골목길 쓸다 발동걸려 저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벽돌 담장에 삐딱하니 기대앉아 저무도록 노래부르면 하 모니카, 바이얼린, 피리 등속을 챙겨들고 마당에 나와 동생들과 함께 음악회를 주관하던 낭만적인 면이 두드러진 녀석의 장삿길 사연. 사내새끼가 무슨 그림이냐고 미술학원 대신 태권도를 가르친 저 아버지와 쌈쌈해서 간신히 미술대학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예술적 감각, 안목, 적성, 취미 다 집어던지고 험난한 삶의 벌판으로 달려간 큰 애 이야기
비내리는 11월의 밤. 나는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가. 왜 그애가 가엾어 지는가. 자기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지 못하도록 누가 종용했는가. 팔자인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그 준수?하고 귀골스럽던 용모가 지금 아니어서 나는 애달픈 것인가. 돈은 만져도 애초에 꿈꾼 00화가와 같은 분위기에서 영영 멀어진 모습에 내 속물 근성이 타격을 입은 것인가. 애지중지하던 피스와 그림붓이, 그림 도구가 어디있는지도, 물감과 크고 작은 각종 붓 종류들이 왜 그처럼 소중했었는지조차 돌아볼 줄 모르는 무신경이 안타까워서인가.
11월의 밤이 슬프다. 슬프다 라는 간단한 말따위로는 내 마음의 풍랑을 몽땅 표현하지 못한다. 어림도 없다. 밤새 궂은 비나 내려라. 아니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갈갈이 찢어지는 내 마음을 훈훈히 덮어줄 함박눈. 김장이야 했든 말았든 상관없다. 아들이 떠나는데 김장이 대수랴.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찢어지는 것은 마음 수련(修鍊)이 부족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