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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alu Flows (압록강은 흐른다) / Mirok Li

능엄주 2016. 9. 11. 20:00
THE Yalu Flows (압록강은 흐른다) / Mirok Li

  

날짜 : 05-02-03 09:03     조회 : 1143    

    중국과 우리나라를 따라흐르는 넓은 압록강에 나는 접근했다.

국경을 넘어 나아가기가 극히 어려웠다. 헤집고 나가야 될 골풀들이 머리 높이까지 자라 있어서, 아주 이따끔씩 논이나 풀밭을 힐끔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무장군인 순찰대가 사방에 퍼져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소총사격 소리가 멀리서 들렸는데. 많은 도망자들이 활동할 것 같은 해질 무렵에 가장 많이 들렸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심지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움직일 때도 나는 배짱좋은 농부나 어부의 안내를 받은 다음, 마침내 사람이 없는 어느 오두막에  도달했다. 여기에 나는 숨어서,기꺼히 도강 모험을 하려는 뱃사공을 기다려야 했다. 다음 날 밤,마찬가지로 도강을 열망하는 학생 두 명이 더 오두막에서 나와 합류했다. 그들은 나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둘 중 하나는 17살도 안된 창백하고 심약한 소년으로, 탈출 모험을 시도한 것을 후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기가 죽어 마루에 앉아 멍하니 쳐다 볼 뿐이었다.


    마침내 사흘째 밤,늙은 어부가 나타나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달빛이 밝았다.

   발각될까봐 두려워서 우리는 오두막을 떠나기를 망서렸으나, 그 뱃사공은 달이 떠 있을 때 국경수비대가 덜 활동한다고 우리들에게 확신시켰다. 우리는 그를 믿었고, 그리하여 그는 갈대와 골풀이 정글을 이룬 듯이 보이는 곳을 지나서 난 힘든 샛길로 우리를 인도했다.  한 시간 이상 힘차게 걸은 뒤에 우리는 덤불숲에 도달했다.


    우리의 안내인이 휘파람소리를 내었고 곧 덤불 속에서 예상했던 회신이 왔다.

    어부 두 사람이 더 나타나 우리를 저 밑 강둑으로 데려갔다.  그것은 무서운 광경이었다. 여기, 바로 강어귀에 근접한 곳에서는 압록강은 너무나 넓어 더 이상 강으로 보이지 않고 망망대해 속에 거의 사라진 듯 했다.

    어부들은 자기네들끼리 뭔가 속삭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우리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자그마한 통나무배 세 척을 그들의   정박지에서 가져왔다. 어부 한 명씩 자기 배안으로 우리들 한 명씩 태웠다. 그리고 간격을 두고 차례로 우리는 강둑에서 멀어져 갔다. 강물을 가로질러 부드러이, 조용히 노를 젓기란 한없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강 복판에 이르자 우리는 상류쪽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나를 태운 뱃사공은 아주 태연한 표정을 하였지만, 말소리를 내서는 안된다고 내게 말했다.  뒤에 이 총소리들은 철교에서 쏘는 경고사격이었을 뿐이라고 속삭였다. 이 빛나고 있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인 여기서는 우리를 아무도 발견못할 것이었다.

   한밤중이 훨씬 지나서야 우리는 건너 편에 닿았다. 어부들은 , 세 시간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중국 국경 도시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는 천천히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말 한마디 없이, 태어나서 처음, 중국땅에서 험난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시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았다.

     한참 동안 힘들게 찾은 뒤에 우리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한국인 주막집을 찾아냈고, 즉시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그날 오후 우리 세 사람은 헤어졌다. 내 동행들 중에서 나이 어린 쪽은 山東省으로 향해 떠났고, 나이든 쪽은 심양으로 향했다.

   나는 도시 이곳 저곳을 산책했다. 좁은 길거리들은 붐볐고, 모든 것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북적되고 살아 있었다. 묘한 사향 냄새가 전 지역에 배어 있었고, 황금색 글씨로 써넣은 모든 간판들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는 우중충했다. 집들이 흰 칠이 아니고, 사람들이 모두 푸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도시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강을 한 번 보기 위해 동산에 올랐다.

   강은 저녁 햇빛 속에 조용히 푸른 빛으로. 강 양쪽의 산들 가운데 모래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건넜던 곳보다 상류인 이 지점에서는, 압록강은 아직, 강폭이 좁아서 채 반 마일도 되지 않았다. 건너 편 사람들의 얼굴도 거의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그물을 말리려고 내걸고 있었다. 여자들과 소녀들은 집밖에 앉아 저녁거리로 콩을 까고 있고,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서로 뒤쫒고 있었다.


   나는 내 조국과 광활한 만주 지방을 가로지르는 이 강의 도도한 흐름을 보았다.

   강 이쪽은 모든 것이 크고 칙칙하고, 엄숙했다. 저 너머 우리 쪽은 모든 것이 자그마하고 반짝거렸다. 산자락에는 밝게 빛나는, 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벌써 저녁 연기가 여러 굴뚝에서 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득히 저 멀리, 고국의 산줄기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첩첩이 쌓여 나타났다. 산은 햇빛에 붉게 빛났다. 그 다음, 서서히 푸르스름한 연무에 싸이기 전에, 다시 한 번 어스름 속에서 환히 빛났다.  상상 속에서 나는 , 더 멀리 남쪽으로 수양산의 협곡과 개울들, 어린 시절 매일 밤 장엄한 저녁 음악을 듣던 이층짜리 탑 모양의 건물을 보고 있었다.  마치 그 거룩한 음향이 머나먼 고향에서 내게로 전해지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압록강은 유유히 흘렀다. 어둠이 내려 앉았다. 나는 산을 내려와 기차역으로 갔다.


- 이 글은 한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교수이며 작가인 이미륵의 독일어로 쓰여진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는 3.1운동 직후 일본 경찰을 피해 중국으로 간후, 독일로 망명하여 자리를 잡았다. 그가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해, 야밤에 천신만고 끝에 도강을 감행하여 중국땅에 도달, 압록강 건너에 있는 고국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고국에의 깊은 슬픔을 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