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두 블럭만 걸어가면 아들 네 집이다.
아들이 홀로 되어 두 녀석을 데리고 대구에서 이사온지 3년이 되었다.
이웃 해 산 게 퍽이나 오래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요즘은 아들 네에 가는 일이 그다지 빈번하지 않다.
처음 얼마동안은 아들네 집에 주 3일 갔을까, 그런 다음 주 1회, 어느 날 아들 네서
나오다가 길에 쓰러지고 부터는 주말 외에는 아들 네 집에 가는 것을 조심하고 있다.
널브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부축해 주어서 겨우 몸을 추스려 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아들 네 집에 가면 일이 많다. 아들은 빈틈 없이 잘 해나가고 있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래도 잘 보면 언제나 그만큼의 일거리가 또 있다.
우선 반찬, 음식이다. 녀석들의 외가에서 공수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이다. 녀석들의 요구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부분 마트에 들려 시장을 보아서 가기도 하고, 아들 네 냉장고에 쌓여있는 식재료를 선별하여 그 중에서 반찬을
새로 만들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버리고 하면서 잠시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게 된다.
돌아보면 몇 시간 동안 해놓은 일이 무엇이었던가 싶게 허망하다.
표가 안 나는 일이 바로 집안 일이다. 표가 안 나는, 생색도 안 나는, 게다가 평생 급료도 받지 않는 일을
20대 결혼 이후 관절이 삐그덕 거리도록 수 십 년 계속해왔다.
집안 일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중단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다른 누구가 대신 해 줄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힘들면 사람을 호출할 수는 있다.
사람부리는 일, 그게 어디 용이한 일이던가. 타인이 와서 할 일이란 한정돼 있다.
그리 간단하게 해결지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새삼스럽다. 가사노동에 졸업이나 수료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긋한 나이와 약한 체력이다. 그래서 아들 네로 가는 두 블럭이 때로 몇 십리 밖 아득히 먼 곳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 것이다.
올 여름은 유독 힘들었다.역사적인 장편소설<무심의 꽃>을 창작 집필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청주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엮느라고 거의 초죽음이었다.
와중에 치아가 말썽을 부려 발치하고 치료하느라 고역도 따랐다. 전례없는 혹서에 그야말로 죽어, 죽어 였다.
9월! 갈바람이 삽상하게 불어온다.
집안에 어려운 일,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여 오래 쉬었던 논문을 다시 펼치고 보니
정신과 육체가 공히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숨이 가쁘다. 간신히 일상을 지탱해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녀석이 궁금하고 생각나는 순간 나는 아들네로 달려간다.
3시부터 밤 10시까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이처럼 내몸은 파김치가 되었지?.
숨 돌릴 겸 아들 방의 책상 앞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선한 성품, 좋은 계모. 다른 조건 다 그만두고 이 둘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긴히 바라는 바는 이에서 더 욕심부릴 수가 없다.
밤길을 걸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앞 뒤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추석 명절을 앞두고 좀도둑이 극성을 부린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을 들은 것 같은데.
봐란 듯이 앞 뒤 창문을 열어놓다니.
내가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창문을 열어두고 달려갔더란 말인가.
제발이지 콩쥐 팥쥐, 장화홍련전 그 고전의 주인공 말고, 어질고 심덕 좋은,
현대판 우렁각시 출현을 바란다면 과욕일까.
이 밤 나의 소망은 맹랑하고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