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길을 묻다(후편)
우리는 더 참지 못하고 힘주면 쓰러지게 생긴 삽작문을 밀치고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계세요? 소리를 한 단계 높였을 때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뉘시오?“ 그는 약간 경계하는 눈빛이었으나 곧 우리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땅을 보러 오셨다구?”
그녀는 마치 친척 오라버니라도 만난 듯이 친정집이 강화 석모도라는 것과 남편이 폐암을 앓고 있는 사정을 말하고 〇〇면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친정집에는 조카가 살고 있으나 병든 남편을 그 지역으로는 데리고 갈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〇〇면이라고? 그럼 바닷가 쪽으로 가야지 잘못 오셨구랴.”
집 주인 아저씨는 60평생 이 고장을 떠나 본 일이 없다면서 고향 사람을 만나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들 대화는 자연스럽게 고향의 까마귀와 감나무로 급진전하는가 싶은 순간 사람좋아 보이는 아저씨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냉장고 문을 열더니 미숫가루 빵 하드 야구르트 등 무엇이나 다 꺼내가지고 왔다. 고향사람에게 대접할 게 별로 없다며 미안한 기색으로.
“자아 드시우. 왼통 도회지 바람이 불어서 땅 버리고 늙은 부모 다 버리고 떠나더니 남는 건 병 뿐이야.”
그녀는 야구르트 병을 받아들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툇마루도 없는 방에서는 고구마 도라지 토마토 호박 들깨 고추밭이 푸르게 연결된 능선 넘어 밤나무 숲이 한 눈에 들어왔다.
6월의 생기가 숲과 밭이랑에 출렁거리고 있었다.
“땅 사서 황토방 지을라면 그게 예삿일 아니우. 〇〇면으로 가지 말고 내 좋은 데를 알려 줄 테니
아예 그 집을 사서 들앉는 게 어떠우? 집이 말짱해서 도배장판이나 하고 들어가 살면 될 거구만. 나도 댁네가 영 남 같지 않아.”
이 시점에서 내가 한 마디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잖아. 가보기는 해야지. 고향사람 좋다고 일정 변경하면 나중 후회할 지 누가 알아. 그만 일어나요.”
“아냐, 아냐, 우선 내가 말한 그 집 먼저 가보자고. 고향사람 와서 같이 살면 좀 좋아.” 적극적인 만류였다.
안주인은 어딜 간 것일까. 본시 아저씨 혼자였던가.
집안은 적적할 만큼 크고 넓었고, 흡사‘전설의 고향’에 출현하는 집 같더니 안채는 달랐다. 부엌살림이 엉성한 것을 제외하고는 귀신이 사는 집 낌새는 아니었다.
주인아저씨가 이번에는 동동주를 퍼가지고 왔다. 그녀는 사양은커녕 동동주 사발을 받더니 냉수 마시듯 쭉 들이켜는 게 아닌가.
‘안 되는데, 갈길 먼데, 번짓수가 여기 아닌데,’나는 안달이 났다.
그들이 고향 바다와 어린 시절의 일화를 5절에서 후렴까지 서리서리 늘어놓는 사이 4시간이 걸려서야
돌아 나온다는 하나 뿐인 노선버스가 그 집 앞을 지나갔다.
“버스 놓쳤잖아. 뭐야 이게?”
짜증과 곤혹스러움으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동동주의 위력은 내 절규도 아랑곳없이 그녀를 바닥에 눕게 했다.
‘지쳤겠지, 병원에 밥 나르고 간병하다가 몸살기가 번진 거겠지, 환자 신경질에 넌더리가 난 건지도 몰라.
땅은 무슨 땅, 황토방은 누가 지을 건데. 생명 유효기간이 고작 3개월이라며.’
나는 황당한 마음을 달래려고 여러 생각들을 동원했다.
주인아저씨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고 그녀는 염치 체면 몰수한 체 코를 골며 단잠에 들었다.
담장 아래 핀 금송화와 접시꽃이 우리를 이 외딴 집으로 부른 것일까. 이제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할까.
일요일 날 차로 길을 안내해 주겠다던 동창 친구가 알면 뭐라고 할 지 나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여름 해는 이미 기울고 먼 데서 뻐꾸기가 운다. 뻐꾹, 뻐뻐꾹…구성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