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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의 단풍처럼

능엄주 2022. 9. 11. 22:29

무량사의 단풍처럼 
- 2019. 가을 부여 심포지엄을 돌아보며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 노래가 유난스레 가슴을 적셔오는 날이었다. 올해, 좋은 일이 겹치기도 했지만 호사다마라 할까. 평온한 내 일상에 마장이 끼어들었다. 먼 길 떠나기엔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병원 오시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집에 가셔서 푹 쉬세요!” 

  내가 옆에 있어 주어도 간병인 아줌마처럼,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일종의 모험을 감행하듯 압구정역으로 갔다. 부여는 어린 시절부터 백제 최후의 왕 의자왕에 대한 연민일지 의구심일지가 뇌리에 맴돌고 있었다.
  백제 당시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백마강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삼십도 아니요, 삼백도 아닌, 삼천 명의 궁녀는 전말이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백마강 강폭과 낙화암의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삼천이나 되는 궁녀를 거느릴 정도로 방탕해서,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최후를 맞이했다는 의자왕에 대한 평가가 과연 진실일까. 바로 그곳으로 우리는 심포지엄을 가는 것이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늦가을 평화와 풍성함이 넘쳐흘렀다. 가을이 깊어가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문우와의 정담도 중요했다. 경치 좋고 친구 좋고의 완벽한 하모니가 아닌가.
  하나관광의 1호차 2호차가 신동엽 문학관에 도착했다. 지난 3월 작가회의 주관으로 이곳에 온 일이 있고, 이번에는 소설가 동료들과 부여 출신 신동엽 시인의 작품과 인생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연잎담’ 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번 세미나의 삼박자 내지 오박자의 궁합이 맞아떨어지는 예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즉 우아, 고급, 실속, 품격에 더하여 맨드라미, 금송화가 멋대로 피어난 주변의 수수한 풍경에 매료되었다.

궁남지의 국화 페스티벌 : 왕궁의 남쪽에 위치한 궁남지는 드넓은 연지(蓮池)였다. 오롯이 고향을 지켜준 마을 어르신을 만나듯, 늦게 피어난 연꽃이 반가웠다. 연꽃뿐이랴! 온통 국화 페스티벌이었다. 꽃의 크기와 색감과 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오! 아! 히야! 놀라움, 감탄을 연발하며 국화로 꾸며낸 절묘한 작품들을 관람했다. 
  특히 국화로 불탑을 조성한 것은 부여인의 선하고 자비로운 성정을 보는 듯했다. 궁남지 물 위에 뜬 작은 섬에도 국화꽃이 만발했다. 작은 섬이 참으로 오묘했다. 국화꽃으로 좌우를 장식한 목척교를 건너 포룡정(抱龍亭)에 이르러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 이야기를 상상하며 김종필이 썼다는 현판 앞에서 분주히 사진을 찍었다.

소설창작환경개선을 위한 방향과 모색 ; 부여 유스타운에 짐을 풀고 나서 ‘소설창작환경개선을 위한 방향과 모색‘ 이란 주제로 2019 소협 가을 심포지엄은 막이 올랐다. 김〇〇 소협 이사장님의 인사말씀, 이〇〇 문협 이사장님의 축사에 이어서 발제자와 질의자가 무대에 올랐다. 은은한 격을 풍기는 <연잎담>의 고상한 식사 여운이 잠을 불러온 것일까, 졸고 있는 회원들이 더러 있었으나, 전체 분위기는 대체로 양호했다. 
주제에 걸맞게, 큰 제목 작은 제목이 충실하고 시의적절했다. 홍〇〇 작가는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 라는 아리스토테레스의 말을 인용, 작가적 소명을 염두에 두고 소설가의 위상을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소설가로서의 긍지, 자질향상, 문학교육 활성화, 협회 시민단체화, 소설의 권리확보. 국가정책의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소협의 다양한 활동을 강조했다. 다른 문화영역에 비해서 뒤떨어진 평점을 받는 창작환경의 발전 방안을, 이 시대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은, 고무적, 낙관적으로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었다.
  두 번째 발제자는 소설의 몰락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4단락 ‘장르를 뛰어 넘어‘ 에서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 노벨문학상 공동수상자의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켜 현실과 환상이 뒤엉킨 짧은 이야기, [태고의 시간들][방랑자들] 작품을 예로 들었다. 현대는 시청각 매체와 인터넷 발달로 요약적이고 짧은 글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웹툰 웹 소설에 대한 거론은 새로운 창작환경을 유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창작환경 개선에 있어서 작가로서 변신뿐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요구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의 약진은 문학 세계의 강력한 돌풍으로, 문학의 지평을 확장하는 좋은 예라고 여겨졌다. 순수문학, 문학성만 강조하기보다 독자층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수긍할 수 있었다.

  숙소인 유스타운 구내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는 바로 이 맛이야! 할 만큼 푸근한 고향 맛이고 어머니 손맛이었다. 외갓집에 온 것처럼 조촐하면서 맛은 제대로 낸 깔끔하면서 정갈함이었다. 

부여의 밤 - 훌랄라치킨과 구드레 조각공원 : 모처럼 합법적 외박이 허용된 날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 위해, 한 무리는 부여 시내로, 다른 몇은 부여의 구드레 조각공원의 야경을 즐기러 숙소 밖으로 나갔다. 하늘의 달빛과 지상의 오색 조명이 어우러진 공원의 밤은 열일곱 어린 소녀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애조 띤 ‘칠갑산’이든, ‘백마강 달밤’이든 노래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고나
    저어라 사공아 이저편 두둥실 
    낙화암 그늘아래 울어나보자

  달빛 내린 벤치에 앉아 한가히 노래가락이나 뽑기에는 부여의 달밤이 아까웠다. 기왕이면 백마강 강둑까지 걷고 싶은 비감한 마음이 들었다.
  공원 내의 조각상은 그 미적 감각이 두드러져 보였다. 아기자기, 정교하다고 할까. 고 정한모 시인의 시비 앞에서 잠시 묵상한 다음, 가을밤을 유유히 걸어 강둑에 올랐다. 나는 왜 백마강만 떠올리면 짜르르 경련이 일어나는지, 어둠 속의 백마강을 굽어보며 이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마침 그때 전화가, 문자가 날아왔다. 훌라라 치킨집이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길가 과일 파는 아주머니와 행인들에게 길을 묻고 또 묻는 적극성을 발휘해, 자의반 타의반 훌랄라에 이르렀다. 아! 매혹의 맥 소주와 매콤달콤한 치킨 향훈이라니! 선남선녀들의 뒤풀이는 그 흥이 절정에 이른 듯,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휴! 잘 왔네! 근사 뻑적이네! 어쩌구 하면서 부천 문인협회 김 작가, 박 작가와 함께 들어라 마셔라 제법 분위기를 띄우게 되었다.
  구드레 조각공원을 더 보고 싶었다. 나는 훌랄라에서 먼저 나왔다. 달밤과 단풍이 어우러진 공원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훌라라를 나오자 이〇〇 이사장님과 몇 몇의 작가들이 담소를 하고 계셨다. 구드레 공원으로 2차 산보를 간 사연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부여를 대표하는 인물과 공원의 달밤을 만끽! 친절한 역사 특강은 이 무슨 호기(好氣)이며 행운인가! 말 그대로 현란한 광복(光復), 지뢰복의 꿈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튿날 ; 늦잠을 잔 탓에 새벽 5시의 고란사 답사는 시기를 놓쳤다. 아마도 다음에 다시 취재하러 오라는 암시라 여겨, 나름 아쉬움을 달랬다. 잠을 푸근히 잔 덕분에 심신이 개운하고 만족스러운 것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교통사고 환자이면서도 모친을 배려한 아들이 새삼 고마웠다. 
  콩나물 황태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유스타운을 작별하고 밖으로 나왔다. 소협 심포지엄의 휘나래를 장식해줄 예증처럼, 안개 아침이 환상이었다. 짙은 안개는 무량한 위무이면서 만수산 무량사,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로 향하는 소설가들에게 기대와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이사장님의 고품격 특강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찰나였다. 
  창밖 경치조차 놓치기 싫어 고개를 좌우로 돌리느라 청강에 몰두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는 했으나, 부여 출신 작가 이야기, 구룡천과 금천이 만나 토질이 비옥하여 넓은 구룡평야가 만백성을 먹여 살린 이야기, 부여 대표 농산물로 석정면에서 생산한 양송이를 비롯, 방울토마토, 밤, 백마강 수박 등, 안심 먹거리 부여의 구드레 브랜드가 귀에 솔깃했다. 
  김〇〇 상임이사님은 부여에서 익산으로 가는 웅포대교만 건너면 전라북도 땅이라며 이번 세미나는 전북, 충남을 넘나드는 세미나라고 하여. 갈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물결까지 만년 청춘인 작가들의 흥을 더욱 북돋우었다. 
  수도 부여를 수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에 축조된 부여 가림성은, 나당 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부흥 운동의 거점이 된 군사적 요지였다는 사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부여세미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〇〇 문협 이사장님의 투철한 고향 사랑과 정사(正史)에 밝은 신실한 설명으로, 말 그대로 금상첨화였다.

만수산 무량사 : 도량에 들어서자 무량사의 단풍은 느낌이 영 달랐다. 이방원의 만수산 드렁칡을 기억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아담한 도량의 풍치를 한껏 떠받치듯, 대부분 붉은색 계열이지만, 만수산의 적요 속에 깜량대로 물든 단풍이었다. 나무마다 개성 있는 가을빛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 개성은 너무나 곱고 독특하였다. 그만 요사채 한 칸을 빌어 무량사의 단풍처럼 여생을 격조 있게 살아보고 싶었다. 

“아 좋다! 여기 머물고 싶네!“ 
“말씀만 하세요. 제가 주지 스님께 부탁해 볼 게요!”

매력 만점 호탕한 웃음이 장기인 김〇〇 기획실장의 한 마디로 내 은밀한 소망이 순백의 목화송이 벌듯 한 순간 활짝 펴올랐다. 매월당 김시습 사당에 잠시 머물어 매월당의 금오신화와 천하를 주유하던 생시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국립부여박물관 ; 점심 식사 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박물관 건물이 현대적 세련미를 풍기며 다가섰다. 넓은 대지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것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1전시실에서 4전시실까지 두루 돌았다. 잘 보관된 유물, 그 한 품목에서도 백제의 선사와 고대문화, 생활문화를 대강 살펴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온 봉황이 정상에 앉아있는 금동대향로를 비롯한 사찰 유물은, 백제인의 우수한 공예 기술과 예술성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금동관음보살입상과 대형금동향로, 백제의 미소 마애불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너도나도 사진 찍기에 바빴다.    어디서 출토되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사전 공부가 필요하므로 다음 기회에 차분히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며 박물관을 나섰다. 금동향로에서 흰색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장면은 백제의 혼이 부활한 듯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림사지 : 사찰 도반들, 또는 불교학의 대가 K 교수님 일행과 정림사지를 전에 몇 차례 다녀갔다. 잔디밭에 둘러앉아 정림사지를 소재로 백일장을 펼친 적도 있어 그때 일을 회상할 겸, 재미있고 웃음 터지는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뒤로 한 채, 자유자재로 도량을 산책했다. 
  절터 중앙에 세워진 백제 양식의 5층 석탑에는 당나라 소정방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 글자를 새겨 백제 멸망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섬뜩하다. 어디에 비문을 쓸 곳이 없어서 감히 한 국가의 상징물을 훼손하다니, 그 망동은 무례하고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다. 망국의 한을 이제라도 풀 수 있을까. 어쩌면 청주 출신인 나의 전생이 백제에서 시발하였던가 싶게 백제의 한에 빠져드는 것 같아 경내를 홀로 걸었다.

맺는 말 ; Go! Go! 서울로!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이 많다. 날씨, 식사, 부여의 안온한 환경, 소설과 소설가 위상에 대한 주제발표, 문협 이사장님의 열강 등, 가장 유익한 심포지엄이었다. 소설가의 위상을 자력갱생, UP시킨 일박 일일이었다. 지성으로 셔터를 눌러 주신 두 분 이사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