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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친구의 전화

능엄주 2022. 9. 10. 16:20

뜬금 없이 늦은 밤 친구가 전화했다. 친구는 해 떨어 지기가 무섭게 초저녁 잠에 빠지는 습관이 있다. 중요한 모임을 알리려고 전화를 하면 언제나 응답이 없다. 그게 친구들 사이에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오랜 친구사이에 늦은 저녁이라도 전화를 할 수 있고, 더구나 그 용건은 중요한 모임을 알리는 것인데, 친구는 해가 진 다음에는 전화를 일체 받지 않았다.

그런 친구가 밤 10시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슬프니, 나 너무 슬퍼서  죽고 싶어. 살아서 뭐 하니?"

상대방에게 답을 구하는 전화는  아닌 것 같고,  죽고 싶다는 마음, 죽고 싶다는 표현은 적당하지가 않다. 나는 친구가 우울증이 깊어진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은 죽고 싶은 사람의 전화로 보기는 어려웠다. 잘은 모르지만 대개 죽고 싶은 사람은 누구보다 더 살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고 추측된다. 자기 이상대로  뜻대로 원활하게 살아지지 않으니까. 쉽게 죽음을 이야기 한다면 고생을 좀더 해보아야 알 게 될 것 같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 야! 네가 죽고 싶다고? 너같이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명랑 활발한 사람이 죽는다고?"

나는 그녀의 죽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체력이 달려서 산책을 못하고, 병이 깊어 혼자서는 끼니 찾아 먹기도 힘들어서 푸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얼마나 실생활에 열심인지, 먹는 것 입는 것 남보다 몇 배나 신경쓰는 그녀의 푸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남편이 수 십년 병상에 있다가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 남쪽의 먼 섬에 머물 때였는데 딸을 시켜 부의를 전하게 하고 전화로 조의를 표했다. 남편과 아름답고 의좋게 살았다고는 말 못한다. 늘 친구는  남편에게 닦달을 당했다고할까. 장기환자로서 점점 이기주의로 발전, 병수발하는 아내의 노고에 대해 매정했다. 친구는 늘 남편 옆에 붙어 있어야하고, 잠시 시장을 갈때도 전전긍긍, 사는 게 지옥이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데 슬퍼서 죽고 싶다고? 남편이 떠나고나서 친구는 곧바로 집수리를 하고 생활환경을 일신했다. 불과 며칠 전에는 인사동에 나와 즐겁게 만나지 않았던가. 마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여인처럼. 

 

"슬프다. 죽고 싶다 그딴 말 하려면 이 전화 끊어. 앞으로도 나에게 전화하지 말어!  너 하나님은 왜 믿어? 옷은 왜 샀어? 너가 말했잖아. 앞으로는 기를 좀 펴고 살 수 있을 거라고. 나에게 죽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노래교실에 가서 노래라도 불러봐!  너 노래 잘 부르잖아. 나는 쉽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너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전화끊자!"

 

수년 동안 전화로 인생상담을 해본, 뭐 그런 경험으로  한 말은 아니다. 친구가 함부로 죽음을 말하는 게  못 마땅했다. 그래서 모질게 대답을 날렸던가. 많은 친구중에서 그녀의 슬픔과 죽음을 나에게 토로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목사님과 친하게 지내고 주변에 마음 통하는 교우들도 많다면서?   

 

쉽게 죽음을 운운하는 친구를  포용하기에는 내 마음이, 내 살아온 여정이  관대하기 어려운가. 그냥 묵묵부답할 것을~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잠이 안 오는 대신 나는 책을 읽기로 했다. 나에게 밤 10시는 잠나라로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